매기 질렌할이 흰 마스크를 쓰고, 황갈색 티셔츠를 입고, 장비를 매고 있다. 그 주위에서는 다른 《로스트 도터》 제작진들이 서로 어울리고 있다.

매기 질렌할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그녀, 《로스트 도터》를 통해 발자취를 남기다

인터뷰 진행 크리스타 스미스
2022년 1월 5일9분

어린 나이부터 영화적 스토리텔링을 깊이 사랑해 왔던 매기 질렌할은 언제나 여자로서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연기라고 생각해 왔다. “연출은 고려해 보지도 않았어요.” 질렌할이 말한다. “제가 사는 문화와 세상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어렸을 때 영화를 만드는 멋진 여성들이 몇 명 있었어요. 당연히 제가 끊임없이 동경하는 제인 캠피온 감독도 그중 하나였죠. 하지만 여성 감독이 많지는 않았어요.”

질렌할은 평단의 호평을 받은 시리즈 《The Deuce》의 제작에 참여하고 성인영화의 감독이 된 매춘부 역할로 출연하면서, 진지하게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연출하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The Deuce》에서 캔디를 연기하며 저 자신이 감독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던 것이 연출에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됐어요.” 질렌할이 말한다. “그렇게 감독 일을 상상하고 고려하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죠.”

연출 데뷔작이자 마치 최면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편 영화 《로스트 도터》에서 질렌할이 선보인 타협 없는 연출 기법을 보면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 배우인 질렌할이 진정한 소명을 찾은 것만 같다. 《로스트 도터》는 엘레나 페란테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강렬한 드라마 영화로,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올리비아 콜먼이 연기한, 거만하지만 뛰어난 비교 문학 교수인 레다는 일도 하고 휴가도 보낼 겸 그리스에 왔다가 다코타 존슨이 연기하는 묘한 매력의 젊은 엄마, 니나에게 매혹된다. 

에너지 넘치는 딸 때문에 힘들어 하는 니나의 모습에, 레다는 두 딸을 둔 젊은 시절 자신의 기억을 솔직하게 돌아본다. 아일랜드 배우 제시 버클리가 젊은 레다 역을, 질렌할의 남편 피터 사스가드가 예기치 않게 레다의 삶을 뒤집어 놓은 교수 역을 맡은 가운데, 질렌할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내러티브를 훌륭하게 이어간다.

《로스트 도터》는 9월 베니스영화제에 공개되면서 극찬을 받았으며, 질렌할은 모두가 탐내던 각본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텔류라이드영화제에서 시사회를 가진 후, 《로스트 도터》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 수많은 호평을 받으며 고담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의 상을 받았다.

이제 영화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질렌할은 콜로라도의 산중에서 《로스트 도터》의 초기 성공과 영화를 탄생시킨 과정, 카메라 뒤편에서 일하며 얻은 통찰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매기 질렌할, 다코타 존슨, 올리비아 콜먼, 《로스트 도터》 제작진이 해변가에 앉아 있다. 물은 투명한 푸른색에, 해변가의 의자는 크림색이다. 콜먼은 흰 로브를 입고 있고, 존슨은 패턴이 그려진 빨간색 숄을 두르고 있다. 질렌할은 파란색 모자를 쓰고 매치되는 파란색 탱크톱을 입고 있다.

매기 질렌할, 다코타 존슨, 올리비아 콜먼, 《로스트 도터》 제작진

크리스타 스미스: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단한 순간을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매기 질렌할:
달나라에 간 기분이에요.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마치 제 영화가 세상에 태어난 기분이에요.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한 무언가가 태어난 거죠. 출산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출산 후 이틀 정도 황홀경에 빠져 있는 기분이랄까요.

이번 영화의 연출에서 보여주신 자신감이 정말 놀라워요.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매번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도요.
MG:
저는 연기할 때도 항상 예술적인 큰 그림에 주의를 기울이곤 했어요. ‘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뭐지? 무엇을 들여다보는 거지?’와 같은 것들을 궁금해했죠. 페란테의 소설을 읽으면서 페란테가 남들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로 사는 과정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여성으로 존재하는 일을 섹슈얼한 관점에서, 또 지적이고 예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죠. 여성으로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봐왔어요. 여성은 섹스 후에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고, 일에 대해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고, 엄마가 되면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한다고요. 여성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제시되는 건데, 사실 이게 딱 맞는 것 같지는 않죠. 그래서 우리는 ‘아, 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는데, 내가 잘못된 건가봐’라고 생각하게 되죠. 

저는 페란테 소설을 읽으면서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이럴 수가, 이 여자가 쓴 책은 정말 막장이군’이라는 생각을 했다가, 1초도 안 돼서 공감할 수 있게 됐죠.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나 막장인 건가? 아니면 우리가 말을 하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인 건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만약 방 안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이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닌, 사람들로 가득 찬 영화관에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누군지도 모르는 또 다른 여성의 옆에 앉아서 이 기분을 느끼는 건 어떨까? 남편이나 엄마, 딸과 앉아서 느껴보는 건 어떨까?’가 됐어요. 매우 스릴 넘치고 급진적인 걸 만들어 보는 것이죠.

어두운색 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고 어두운색 샌들을 신은 매기 질렌할이 파란색과 회색이 섞인 모자를 쓰고, 흰 리본이 달린 챙 넓은 밀짚모자를 들고 있다. 연두색 덤불이 나 있는 진흙길을 걸어가고 있다.

매기 질렌할

판권을 취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나요? 엘레나 페란테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인데, 어떻게 연락을 취하셨나요?
MG:
페란테가 진짜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부부밖에 없었어요. 이들 부부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페란테와 저의 조합이 좋을 거라 생각하시더군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어요. 정성을 들여 페란테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어요. 소설을 영화화할 수 있는 판권과 영화를 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하는 내용이었죠. 그러자 제 편지에 답변이 왔어요.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연출을 맡지 않으면 계약은 무효예요.”라고요. 내부자 정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페란테가 분명히 실제로 여자일 거라고 믿어요. 제가 상상해 본 모습은 70대의 여인이었어요. 우주 반대편에서 지혜로운 여인이 저에게 지지를 보내주는 것 같았죠. 저는 책을 영화화하는 과정이 배우로서 대본을 보며 ‘여기 대사가 나오네. 두 사람이 음식점에서 함께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있어. 그런데 이 장면의 본질이 뭘까? 이야기 속에서 어떤 목적을 갖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여기 이 섹션은 어떤 목적이 있을까? 이걸 어떻게 영화적인 무언가로 탄생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드디어 촬영장에 도착해 메가폰을 잡았을 때, 어려웠던 점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MG:
저는 정말 많은 촬영장에 서 봤어요. 그래서 실제로 영화를 찍는 부분은 그렇게 무섭지 않았어요. 이미 해봤으니까요. 물론 촬영할 때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 그 점이 긴장되긴 했죠. 하지만 촬영장에 있을 때는 흐름을 탈 수 있었어요. 흐름을 타고 있을 때는 이야기가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면 될지, 톤과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어요. 그런 걸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까마득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 곧 다시 모든 게 맞아 들어가면서, ‘이제 흐름이 찾아왔어. 지금이야.’라고 하게 되죠. 촬영장에 있을 때는 그런 톤에 귀를 기울였어요. 가장 무서웠던 건 비이성적인 두려움이었어요. ‘내가 이걸 해낼 능력이 있나?’하는 의심이었죠. 이에 대한 해독제는 작은 것부터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것이었어요. ‘지금 내가 영화 전체를 연출할 역량이 있나?’ ‘아니.’ ‘하지만 이 장면을 진행하고 이 장면에 대해서 고민하는 건?’ ‘그건 할 수 있지.’ 이런 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거예요.

피터 사스가드와 매기 질렌할이 장비들과 검은색 플라스틱 의자들 사이에 서 있다. 사스가드는 초록색 재킷을 입고 있고, 질렌할은 카키 바지에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다.

피터 사스가드와 매기 질렌할

회상 장면이 촬영된 방식이 정말 매끄러웠어요. 올리비아 콜먼과 제시 버클리는 외형적으로 닮지 않았지만,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죠.
MG:
그게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놀라워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제시 버클리와 올리비아 콜먼이 예술적인 힘이 가득한 배우이기 때문이에요. 보는 사람들에게 이 둘이 같은 사람이라고 믿으라고 하는 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당연히 둘은 다른 사람이니까요. 마치 관객에게, ‘시를 한 편을 준비해 봤어요.'라고 하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제시에게 이렇게까지 말했어요. “탈색한 금발 머리를 한다 해도 상관없어요. 서로 비슷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그저 마음으로 이 여성들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구나, 하고 믿을 거예요.”

이번 영화에서 다코타 존슨은 제가 그토록 기다려 온 연기를 선보였어요. 저는 항상 다코타에게 깊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으로서 그것을 꺼내주신 것 같아요.
MG:
다코타가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정확히 이런 단어를 쓴 것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말이었어요.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싶어요. 저 바닥까지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그래, 가자.’라고 했죠. 제가 실험해보고 싶었던 한 가지 지적 요소가 있다면, 바로 대상화를 가지고 노는 것이었어요.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유형의 대상화를요. 다코타는 배우 모니카 비티나 고다르 감독 영화에 나오는 여인처럼 보여요. 그런데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죠. ‘정말 아름답다. 멀리서도 매혹적이야.’라고 느끼게 되는 이 여성이 입을 열면, 내면의 갈망과 커다란 결핍이 있는 거예요. 갑자기 평범한 인간이 된 거죠. 이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정말 궁금했어요.

이 영화를 만들며 경험한 것 중에 평생 간직할 만한 것이 있나요? 
MG:
정말 많죠.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다면, 핼러윈 날 자정에 촬영을 다 마쳤을 때였어요. 약간 정신이 멍했어요. 피터가 멀리 가 있어서 아이들이 베이비시터와 함께 촬영장에 와있었거든요. 핼러윈 복장을 하고서요. 저는 이것저것 다 한꺼번에 하려고 애쓰고 있었고요. 코로나 때문에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밖에 나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어요. 그때, 항상 원칙대로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음향 담당이 그러더군요. “음악 좀 준비했어요. 한 곡 틀어 드릴게요.” 그러더니 작은 스피커가 있는 곳으로 저를 안내하더니 ‘Talking Heads’의 《Once in a Lifetime》을 틀어줬죠. 모두가 춤추기 시작했어요. 팬데믹이 한창인 시기에 섬 한가운데에서, 영화 촬영을 끝낸 모든 사람들이 몇 시간이고 춤을 춘 거예요. 제가 듣기론 해가 뜰 때까지 춤을 췄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