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케이블 니트를 입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흑백 사진.

베네딕트 컴버배치

《파워 오브 도그》의 복잡한 캐릭터, 악명 높은 목장주를 연기한 경험에 대해 말하다.

인터뷰 진행: 크리스타 스미스
스타일링: 조지 코티나
2022년 2월 9일10분

위협적이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목장주, 필 버뱅크. 그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면, 바로 약자로 보이는 이들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적대감일 것이다. 제인 캠피온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강렬한 드라마 영화 《파워 오브 도그》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은 역할이 바로 이 캐릭터다. 평소 컴버배치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지만, 뉴질랜드에서 영화를 찍는 동안 컴버배치는 몬태나주의 가족 목장을 공포의 폭군으로서 지배하는 잔인한 목장주의 모습을 유지했다.

“제인은 저를 스태프에게 ‘필’이라고 소개했어요.” 컴버배치가 설명한다. “‘여러분, 이 분은 필이에요. 촬영이 끝나면 다정한 베네딕트를 만나게 되실 거예요.’라는 말로 소개했죠. 평소의 저는 항상 과도하게 공손한 편이에요. 그래서 제 행동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해명하려는 경향이 하죠.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 주려 하고요. 하지만 필은 달라요. 매우 거슬리죠.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하는데, 그게 그의 발목을 조금은 잡기도 해요. 그런데 그렇게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제인은 제가 말 그대로 벌거벗은 채 필이라는 인물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줬어요.”

이 접근법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그토록 사람 좋은 영국 배우가 햇볕에 그을린 필의 피부 아래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것을 보면 솔직히 놀랍기 그지없다. 2021년 9월, 베니스영화제에서 영화가 공개된 이래로 평론가들도 이 부분에 대해 꾸준히 언급해 왔을 정도이다. 《파워 오브 도그》는 토머스 새비지가 쓴 동명의 1967년도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안에서 컴버배치가 선보인 연기는 그의 연기 인생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다. 20년 넘게 스크린과 연극 무대에서 컴버배치가 쌓아 온 다양하고도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극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슈퍼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한 것으로 코믹콘에서 사랑받는 컴버배치는 에미상 수상의 BBC 시리즈 《셜록》의 주연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컴버배치는 ‘런던 음악 및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London Academy of Music and Dramatic Art)를 졸업하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워 호스》 《노예 12년》 《1917》 등의 묵직한 드라마 장르에서 열연을 펼쳐 호평을 받아 온 배우이기도 하다. 컴버배치는 또한  2014년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선구적 수학자 앨런 튜링으로 분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앨런 튜링은 세계 2차 대전 중에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풀어내는 데 성공하였으나, 이후 동성애가 금지된 영국에서 동성애 행위로 고발되어 결국 자살을 한 비운의 인물.

캠피온 감독이 《파워 오브 도그》 섭외로 컴버배치에게 연락했을 때, 컴버배치는 캠피온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사실과 어마어마한 도전이 될 ‘필’이라는 캐릭터를 맡게 된다는 사실에 즉시 매료되었다. 필은 남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아들이 딸린 과부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결혼하여 그녀를 집으로 들이자, 위협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러다 로즈의 영리하지만 독특한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에게 의외의 흥미가 생긴 필은 작전을 수정한다. 두 사람의 기이하고도 예상치 못한 유대감은 필 안에 깊이 감춰진 무언가, 그가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 진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보다 밀도 높은 캐릭터와 그보다 재능 있는 감독의 조합은 없을 것 같았어요. 그거면 됐죠.” 컴버배치가 말한다.

컴버배치는 최근 《Queue》 소속 크리스타 스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풍족하게 자라 온 환경을 배척하고 몬태나 황야에서의 궁핍한 삶을 선택한, 복잡하고 치명적 결함이 있는 필 버뱅크로 변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털어놓았다. 비극적인 인물인 필은 본인의 정체성과 세상의 기대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어두운 바지와 흰 셔츠, 회색 가디건을 입고 의자에 앉아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크리스타 스미스: 필 버뱅크는 대단히 육체적이면서도 굉장히 이지적인 모습을 보이는 극적인 캐릭터인데요, 그의 어떤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나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필이 몹시 복잡한 캐릭터라는 점이 좋았어요. 매 순간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죠. 맥락 없이 보면 엄청나게 고약하고, 심술궂고, 지극히 고통스러우면서도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을 하는데, 내면에는 깊은 갈등이 있어요. 자신과 벌이는 사투이자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사투이며, 진짜가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이자 자신이 자라 온 방식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섞여 있죠. 그조차도 복잡해요. 

필은 부유하게 자랐어요. 부모님은 말을 거의 타본 적도 없고, 당연히 가축 거세 작업이나 낙인을 찍고 소떼를 몰고 울타리를 치는 작업처럼 소목장 일과 관련된 일로 손이 더러워져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필은 목장 일에 푹 빠졌어요. 인생의 목적을 찾았고, 그 와중에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까지 했죠. 필은 시도하는 것마다 특출난 재능이 있어요. 밴조를 연주할 수도 있고, 작은 의자 정도는 나무토막과 칼 하나로 직접 만들죠. 하지만 필의 내면에는 진정한 자신의 본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문제가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그 점은 배우로서 탐구할 수 있는 풍성한 선택지이자, 동기 부여가 되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제인과 같은 영화감독과 함께하는 거잖아요. 제인은 섹슈얼리티와 남성성, 젠더, 육체적인 감각을 탐구하는 것에 깊이 열려 있어요. 제가 역할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죠.

말 타는 것이나 밧줄을 다루는 것은 가짜로 시늉만 할 수는 없을 텐데요.

BC: 직접 해야죠. 무얼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아야 해요. 직접 목장에 가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연습했어요. 가죽을 벗겨 처리하고, 자르고, 다듬고, 튼튼하게 만들고, 길이를 늘리는 것은 물론, 직접 말을 타고 밧줄을 다루는 것까지 다 배웠죠. 끝이 없었어요.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필의 수준만큼 잘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필은 그 모든 것을 전문가처럼 해내는 캐릭터거든요. 제가 다 숙달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심지어 말 위에서 담배를 한 손으로 마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힘들더라고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회색 셔츠를 입고 벽에 기대고 있다. 얼굴에는 부스스하게 수염이 나 있다.

제인 캠피온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BC: 두려웠어요. 영화계에서 상징적인 인물이고 대단한 영화감독이니까요. 제인의  작품은 저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죠. 아마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홍보 중인 시기였던 것 같은데, 당시 가족들과 머물던 집에 제인이 찾아왔어요. 배낭을 메고 들어와서는 ‘어,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저는 제인이라고 해요. 만나 뵙고 싶었어요.’라고 하더군요. 제인은 인간미 있고 평범하면서 곁에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에요. 동시에 연금술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데, 언제 그 마력이 터질지 모르죠. 당시 대화 중에 제인의 이런 마력이 드러났어요. 반짝이는 탁월함과 이야기에 대한 섬세한 통찰력, 제인의 세계관에서 드러났죠. 룩북으로 그 세상을 구현하고 싶어했고, 필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말해주었어요. 제인은 항상 필을 마치 반인반수처럼 털이 북슬북슬한 가죽 덧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상상했다고 해요. 워낙 자연의 일부인 인물이고, 자연에 푹 빠져 있는 캐릭터니까요. 필을 이해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하기도 해요. 그래서 유명한 탐험가인 루이스와 클라크에 대한 글도 많이 읽었고 당시 몬태나 주에 대한 글도 많이 읽었어요. 그런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들어가서 해내느냐예요. 해내는 일만 남는 거죠.

말씀하셨듯이, 필은 모든 것을 잘하는 캐릭터예요. 하지만 이렇게 지적으로 우월한데도 남동생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요. 동생은 현실적이고, 지적이지 않고, 교양도 없고, 필이 존중할 수 있는 모습이 없는데도요.

BC: 맞아요. 필은 동생을 가슴 깊이 사랑하지만, 동생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기대기 위해서예요. 건강한 사랑은 아니죠. 원작에서 필은 조지가 주변 세상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에 실망해요. 필은 조지를 사랑해서 함께 동반자로서 우애를 나누고 싶은데 그 점 때문에 크게 화가 나는 거죠. 조지는 25년 동안 쌓아온 형과의 관계에서 아주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어요. 조지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데, 형은 과거를 기리고 싶어 하죠. 무려 반평생 전에 일어난 깊은 과거를요. 이 점이 바로 필의 행동이 겉보기에는 혐오스럽지만 그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예요. ‘이 사람이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더 다가가게 되죠. 예술에서 반항을 하거나 고통을 겪는 캐릭터가 나오면, 그건 누군가가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필은 절실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못해요. 취약함을 드러낼 수 없는 세상에서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처음부터 필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필은 진짜 자신을 찾는 것과 진짜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항하는 것 사이에 갇혀 있고, 동시에 진짜가 아닌 정말 많은 것으로부터 고통을 받죠. 그런 점 때문에 필은 분노해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흰 셔츠를 입고 머리 위로 의자를 들고 있다.

필은 형제 관계에서 우두머리 역할이고 조지는 따르는 역할인데요, 제인 감독이 리허설 때 그 다이내믹을 구축하려고 배우 제시 플레먼스와 춤을 추게 했다고 들었어요.

BC: 정말 멋진 방법이었어요. 덕분에 빠르게 의도된 다이내믹을 형성할 수 있었죠. 두 캐릭터의 관계 구조를 육체적으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시의 몸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함께 자라왔고 같은 침대에서 나란히 자는 형제 사이라면 서로의 냄새와 느낌을 알테니까요. 제시와 저는 서로를 아끼고 배우로서 매우 존중하는데, 그렇게 바로 형제 사이의 거리를 구축할 수 있어서 놀랍도록 좋았어요. 제시는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해요.

배우로서 엄청난 커리어를 갖고 계신데요, 팬들의 경우 《셜록》에서의 모습을 좋아하는 팬들도 있고, 마블 영화에서의 모습을 좋아하는 팬들도 있고, 배우로서의 모습 자체를 사랑하는 영화광 팬들도 있을 거예요.

BC: 멋진 일이죠. 다른 배우들도 비슷할 거예요. 정말 운이 좋은 일이죠. 저는 어떤 매체가 특별히 저에게 더 의미가 있거나 덜 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역할들은 서로 겹치는 것들이 많거든요. 항상 진심을 담아 헌신하는 것, 역할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 여정으로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그린스크린 앞에서 탁구공을 상대로 감정적인 장면을 찍는 것과 직접 말이나 사람을 상대로 연기하는 것은 달라요. 다양한 환경에서 연기를 펼칠 수 있어서 행운이에요.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있죠.

제인 캠피온과 함께 이번 촬영을 진행하면서 어떤 점을 배우셨나요?

BC: 나 자신을 벗어나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 그에 대해 미안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 또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 배웠어요. 제인 덕분에 지금까지 중에 가장 열린 마음으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시에 캐릭터 자체도 그 점이 필요했었으니 완벽한 조합이었죠. 지금 저는 두려움이 없어요. 진짜 그런 기분을 느껴요. 정말 대담해진 기분이죠. 이번 경험이나 이번 영화에서 겪은 일 때문만이 아니라, 제 인생에서 그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와 꼭 의견이 같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때로는 거절해도 괜찮다는 것, 나 자신으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이 모든 깨달음이 필과 필의 비극, 전체적인 경험을 표현하는 데에 깊은 영향을 줬어요. 저는 배우로서 아직 발견하지 않은 영역, 겪어보지 못한 영역을 경험할 수 있었고, 상당히 대담해진 기분을 느낍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흰색 케이블 니트 스웨터를 입고 구부린 자신의 팔 위로 머리를 기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