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작가이자 감독 애덤 매케이는 동세대 최고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매케이는 2008년 부동산 폭락 사건을 자세히 다룬 《빅쇼트》와 미국 전 부통령 딕 체니의 유명한 삶과 커리어를 다룬 《바이스》를 통해 날카로운 풍자적 위트를 선보인 바 있다. 두 영화 모두, 코미디하고는 딱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를 가지고 우리의 현대 사회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곤경과 특출난 성격의 소유자들을 훌륭한 유머와 통찰력을 통해 현명하게 스크린으로 옮겨냈다.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감독, 매케이는 최근 공개된 《돈 룩 업》에서 또 한 번 실력을 발휘했다. 지구의 종말을 다룬 블랙 코미디이자 초호화 출연진을 자랑하는 《돈 룩 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하는 두 명의 천문학자가 지구로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지구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계속해서 장애물을 마주한다. 처음엔 ‘일단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자질 없는 대통령이 문제였다. 다음은 타일러 페리와 케이트 블란쳇이 부추기면서 더욱 거세게 긍정적인 인포테인먼트만 찍어내는 미디어,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 들불처럼 퍼져나간 음모론이 이들을 좌절시켰다.
만약 《돈 룩 업》이 배가 아플 정도로 웃기지 않았다면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혜성이 강타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로 그 곳,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강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생각하며 영화의 그런 점을 끊임없이 조절해야 했어요.” 매케이가 말한다. 놀랍게도 매케이가 《돈 룩 업》을 쓴 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흔들기 전이었다. 《돈 룩 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코미디 경력에서 기억에 남는 최고의 순간들은 무엇이었는지, 매케이와 이야기를 나눠보자.
Niko Tavernise
크리스타 스미스: 이 영화를 팬데믹 전에 쓰셨다는 것이 참 놀라워요. 영화의 기원이 무엇인가요?
애덤 매케이: 약 14년 전이었어요. 그때쯤 기후 위기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들려오는 모든 소식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무섭고 대단한 일이었죠. 그러면서 ‘이건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일을 다룰 수 있겠어요? 마치 크라카타우 화산섬이 분화했을 때 살아있었다고 치면, ‘저기, 이 화산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산에 연기가 너무 많이 나고 있잖아. 이것에 대한 연극을 써봐야겠어.’라고 하는 것과 같잖아요. 일단은 제가 항상 하던 대로 두 페이지 분량 정도 되는 영화 아이디어를 5~6개 적어봤어요. 하나는 장대한 드라마였고, 또 하나는 《환상 특급》 스타일의 반전이 있는 스릴러였어요. 전부 나름 괜찮았지만, 3년 전 친구 데이비드 시로타와 이야기하면서 지금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어요. 데이비드가 트위터에 이런 농담을 올렸어요. “혜성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네요.” 영화에 대한 커다란 시작점이자, 충분히 간단한 포인트였어요.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레퍼런스였죠. 다들 그런 재난 영화를 본 적이 있잖아요. 《죠스》도 있었고 《타워링》도 있었죠. 마블 유니버스만 봐도 그렇고, 이런 영화는 전부 세계 종말로 끝나요. 그래서 제가 데이비드에게 그랬어요. “이 아이디어로 가는 게 좋겠어.” 이걸 선택한 이유는 웃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정상이 아닌 세상에 살더라도 웃을 수 있는 게 중요하거든요.
저 역시 미디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의 어느 부분들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특히 소통이 무너지는 부분이 저에게는 인상 깊었어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과학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어요.
AM: 영화는 우리가 만든 이 거대한 미디어 기계가, 즉 문화 미디어, 소셜 미디어, 인터넷이, 우리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미화된 광고와 같다는 것을 테마로 내세우고 있어요. 이런 미디어들은 나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지만, 미디어에서는 이 이야기를 전혀 대놓고 하지 않으려고 하죠. 대신 뭘 하냐고요? 정유 회사나 휘발유를 쓰는 트럭, 자동차 광고로 넘어가죠. 누군가를 콕 집어 탓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열심히 일하는 훌륭한 언론인들도 많죠. 제가 말하려는 건, 이게 구조적인 문제라는 거예요.
큰딸과 최근에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를 봤어요.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이 정말 제대로 짚어냈더군요. 방송 저널리즘이 망가져버린 바로 그 순간을요. 방송 보도가 엔터테인먼트화되고, 서로가 소통하는 방식이 수익에 좌우되기 시작했어요. 보도를 하면서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광고를 팔아야 하는 거죠. 이건 당장 시정이 필요한 위험한 일인데도, 정부 역시 같은 힘에 놀아나고 있죠. 페이스북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있는 게 사실인데도 이 소셜 미디어 거대 기업들을 개혁하거나 단속하는 법안을 발의하지 않잖아요. 무서우면서도 너무나 웃긴 상황이에요. 마크 저커버그가 공개적으로 발언을 할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한다니까요. ‘마블 영화의 슈퍼 빌런으로 출연해도 상식을 벗어난 빌런일거야.’
니코 태버니지
처음으로 코미디를 커리어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AM: 저희 어머니가 정말 재미있는 분이세요. 어렸을 때 침대 맡에서 어머니가 ‘보비와 수지가 쇼핑을 가요’ 같은 어린이 동화책을 읽어 주시곤 했는데, 그럴 때 이야기를 ‘가게에서 도둑질하는 아이들’로 바꾸셨어요. 함께 어찌나 웃었던지요. 저희 아버지도 코미디를 좋아하고 통쾌하게 박장대소하는 분이세요. 저는 어렸을 때 장난 전화를 하고 차에 눈덩이를 던지는 것도 무지 좋아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스티브 마틴의 레코드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70년대에 《몬티 파이튼》을 PBS에서 처음 봤을 때는 눈이 번쩍 뜨였어요. 에디 머피는 레벨이 달랐어요.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라고 할 정도였죠. 그러다 제가 고등학교 때 케이블 TV가 나오기 시작했고, 데이비드 레터맨부터 《SNL》, 나중에는 《Kids in the Hall》 같은 스케치 그룹을 접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걸로 먹고살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70년대만 해도 코미디로 먹고살겠다는 건 거의 미친 짓이었거든요. 그쪽에 일자리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케이블 TV가 히트 치고 영화 제작이 늘면서, 고등학교 졸업반과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이 일을 정말 업으로 할 수 있을 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정상이 아닌 세상에 살더라도 웃을 수 있는 게 중요하거든요.
애덤 매케이
1995년에《SNL》에 처음 합류하셨는데요, 윌 페럴과 같은 날 시작하셨다고요. 《SNL》에서 일하는 건 얼마나 힘드셨나요?
AM: 모두가 꿈꾸는 일이고 정말 멋진 일이지만, 그만큼 매우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했고, 잠도 못 잤고, 온종일 대본을 썼죠.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늘 원했던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1년이 지났을 때, 론과 프로듀서인 스티브 히긴스가 저를 수석 작가로 승진시키겠다고 했을 때가 충격적이었죠. 농담인 줄 알았다니까요.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제가 취직했을 때가 27살이라, 아직 고집이 세고 제 코미디에 우월감을 느끼는 풋내기였다는 거예요. 《SNL》이 제가 아닌, 론 마이클의 쇼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2년이 걸렸어요. 제가 SNL의 가장 대단한 개혁가라는 생각을 버리고 긴장을 풀고 나니, 최고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죠. 스케치 대본뿐만 아니라 협력과 프로듀싱, 무엇보다도 영화 제작에 대해 배웠어요. 론이 저와 제 스태프들을 위해 예산을 마련해 준 덕에 15~16개의 단편 영화를 찍을 수 있었죠.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니코 태버니지
2007년 ‘퍼니 오어 다이(Funny or Die)를 설립하신 후, 막내 딸 ‘펄’이 출연한 ‘The Landlord’ 동영상이 바로 화제가 됐어요. 펄이 아빠를 용서했나요?
AM: 아직도 재밌는 영상이죠. 펄은 지금 16살인데, 너무 다정하고 착한 아이예요. 처음 동영상을 만들었을 때, 제 아내가 “어디 우리 딸을 아역 스타로 만들기만 해봐.”라고 하길래 “걱정하지 마. 그냥 윌이랑 만드는 짧은 동영상이야. 몇 백만 뷰 정도 나올 거야.”라고 대답해 줬죠. 그런데 물론 2억 뷰를 넘었어요. 아이가 2살도 안 됐을 때였는데, 이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호텔의 수영장에 있는데 사람들이 펄을 알아본 거예요. 펄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아내는 저를 ‘당신의 목을 졸라 버릴 거야’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어요. 펄은 영화 제안도 받았어요. 무려 성룡이 출연하는 영화의 제안을 받았는데, 아내가 바로 거절했어요. 그 덕분에 펄은 평범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죠. 시간이 지나고 펄이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펄 역시 그때를 떠올리고 웃죠.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아내가 아니었다면 펄에게 계속 연기를 시켰을지도 몰라요.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